영문 계약서, 서명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5가지 조항


해외 거래처로부터 영문 계약서를 받으면 대부분의 기업은 가격, 납기, 수량 같은 사업 조건만 확인합니다. 그런데 막상 분쟁이 생겼을 때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계약서 뒷부분에 "General Provisions"나 "Miscellaneous"라는 제목으로 묶여 있는 조항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문 계약서는 대부분 영미법의 개념을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그래서 한국법의 감각으로 읽으면 같은 단어도 전혀 다른 의미가 되곤 합니다. 서명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다섯 가지 조항을 정리했습니다.
1. 준거법과 분쟁해결 조항 (Governing Law / Dispute Resolution)
상대방이 준비한 계약서에는 보통 상대방 국가의 법과 법원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분쟁이 생겼을 때 외국 변호사를 선임해 외국 법원에서 외국법으로 다퉈야 합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소송비용 때문에 사실상 권리 행사를 포기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확인할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지정된 준거법과 분쟁해결 장소가 우리 회사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인지. 둘째, 이긴 뒤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지입니다. 상대방의 자산이 있는 국가가 한국 법원의 판결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한국 법원 관할을 확보하더라도 의미가 크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뉴욕협약에 따라 170여 개국에서 집행이 가능한 중재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2. 간접손해 배제와 책임한도 (Consequential Damages / Limitation of Liability)
"Neither party shall be liable for any indirect or consequential damages"라는 문구는 거의 모든 영문 계약서에 등장합니다. 문제는 '간접손해(consequential damages)'라는 개념이 한국 민법의 통상손해·특별손해 구분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준거법에 따라 일실이익(lost profits)이 배제 대상에 포함되는지 해석이 갈릴 수 있으므로, 배제되는 손해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책임한도(cap)도 함께 보셔야 합니다. 상대방의 책임은 '계약금액 이내'로 제한되어 있는데 우리 회사의 책임에는 한도가 없는 비대칭 구조가 의외로 흔합니다. 한도가 양측에 똑같이 적용되는지, 고의·중과실이나 비밀유지 위반처럼 한도에서 제외되는 예외가 합리적인 범위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3. 면책·보상 조항 (Indemnification)
Indemnity는 국내 계약 실무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라 가볍게 넘기기 쉽지만, 실제로는 가장 큰 금전적 위험을 담고 있는 조항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인 손해배상과 달리, 특정 사유가 발생하면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상대방이 입은 손해와 방어비용까지 보전해야 하는 약정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3자의 지식재산권 침해 주장이나 제품 결함으로 인한 소비자 청구가 대표적인 보상 사유입니다.
"defend, indemnify and hold harmless"라는 표현이 보이면, 보상 사유가 우리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인지, 변호사 비용이 포함되는지, 앞서 본 책임한도가 indemnity에도 적용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4. 손해배상액의 예정 (Liquidated Damages)
납기가 지연되면 하루당 계약금액의 일정 비율을 지급한다는 식의 조항입니다. 한국법에서는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하면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398조 제2항). 반면 영국법에서는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는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금액이 위약벌(penalty)로 판단되면 조항 자체의 효력이 부정될 수 있습니다. 같은 조항도 준거법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따라서 예정액에 상한(예: 계약금액의 10%)이 설정되어 있는지, 그리고 예정액 외에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나 계약해지가 추가로 가능한 구조인지 함께 검토하셔야 합니다.
5. 완전합의 조항 (Entire Agreement)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 담당자가 이메일로 "추가 비용은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더라도, 계약서에 완전합의 조항이 있으면 그 약속은 계약 내용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이 조항은 서명한 계약서가 당사자 간 합의의 전부이며, 그 이전의 협의·서신·구두 약속을 모두 대체한다고 정하기 때문입니다.
협상 중에 받아낸 양보나 확약이 있다면 반드시 계약서 본문이나 부속서에 반영되었는지 확인하십시오. 또한 '계약 변경은 양 당사자가 서명한 서면으로만 효력이 있다'는 조항이 함께 들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체결 후 이메일로 합의한 변경사항도 정식 변경계약으로 남겨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서명 전 계약서 검토는 필수
분쟁이 발생한 뒤 불리한 조항을 뒤집는 데 드는 비용은 서명 전 검토 비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한국과 영국 자격을 동시에 보유한 변호사가 대형로펌 수준의 계약 검토를 중소기업이 부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공합니다.
해외 거래처로부터 영문 계약서를 받으셨다면, 서명 전에 먼저 상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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